Our Story

우리들의 노래

Larrivee에 관심을 갖고 사랑해주시는 플레이어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창시자 Jean Larrivee의 장인정신에 대한 열정과 영감을 토대로 "Larrivee"라는 브랜드 네이밍을 하였습니다.Larrivee는 평생을 이루어온 그의 모든 경험과 열정을 바탕으로 제작되고 있습니다.

라리비의 가장 큰 철학은 합판 또는 합성물로  악기의 제작을 하지 않으며,
 FSC인증의 목재만을 사용하며,그 목재는 최고의 목재만을 사용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악기를 많이 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지 최선을 다하여 합리적인 가격의 럭셔리 하이엔드 기타를 제작하는 것에 있습니다.

Timeline and Geography

TORONTO 1967-1977  

Larrivee의 시작

60년대 후반 히피족의 혁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을 시절로 클래식 기타에 관심이 많았던 Jean Larrivee는 전문 기타리스트 인 Edgar Munch Jr의 공연에 참석하게 되었고 이 공연의 끝에서 독일 출식이며, 유명한 제작가였던 Edgar Munch Sr을 만나 클래식 기타 제작에 대한 깊은 인상을 받게 되어 그의 견습생이 되었습니다.

라리비는 1970년까지 타라곤 극장 2층에 첫 상용작업 공간을 확보하면서 지하실에서 3년간 견습으로 일을 하였습니다.
이때는 포크음악이 번창하는 시기여서 자연스럽게 토론토 포크센터가 만들어졌고, 라리비는 통기타의 제작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가 라리비를 대표하는 깨끗하고 맑은 고음과 부드럽고 중저음, 펀치감 있는 베이스를 표현할 수 있는 라리비만의 X 브레이싱
시스템을 제작하였습니다. 

그 후 몇 년동안 라리비의 꾸준한 성장과 변화가 있었습니다. 재능있고 젊은 예술가들이 인재들이 합류하였고 웬디 존스는 숨막힐 듯 아름다운 인레이를 제작하는 지금의 라리비의 아내 웬디 라리비가 되어 라리비 기타를 하나의 예술로 승화시켰습니다.

1977년 라리비는 전세계의 연주자와 제작가(Luthiers)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다. 세계적인 싱어송라이터인 피터야로(Peter, Paul and Mary)와 브루스 콕번은 라리비 기타를 처음으로 연주했던 아티스트입니다. 라리비는 현재 30개의 기타를 생산하여 캐나다 전역에 판매하며, 유럽으로 수출을 합니다. 미국의 아티스트들 역시 Jean Larrivee의 기타를 원해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VICTORIA 1977-1982

라리비는 제작에 적합한 따뜻한 환경과 더 좋은 시트카 스프루스 목재를 구할 수 있는 밴쿠버 아일랜드의 웨스트 코스트로 제작에 꼭 필요한 소수의 인원과 함께 이전하였습니다. 
빅토리아 주에서는 라리비만의 아이디어를 적용한 공구를 제작하고, 전문화된 기계로 정밀도를 높이면서 더 많은 기타를 제작하기 위한 장비가 없어 직접 제작하여 생산을 합니다. 하루에 4개의 기타만을 생산하며, 향후 20년간 기타를 제작할 수 있는 공정을 완성하였습니다. 라리비는 고품질의 시트카 스프루스를 얻기 위한 벌목업체와의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최고의 목재만을 원했던 라리비는 직접 찾아야만 했고, 밴쿠퍼 아일랜드 북부 해안의 열대우림 등을 탐험하면서 최고의 목재를 발견하였습니다.

NORTH VANCOUVER 1983-1992

시트카 스프루스 목재에 대한 접근성과 제작에 유리한 환경으로 인해 회사는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지역에만 국한되는 어려움에 직면한 라리비는 세계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
미국으로의 이주를 결심하게 됩니다. 라리비의 장남인 존 주니어가 옆에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지만, 이 시기가 80년대였고, 악기시장은 전자 키보드와 화려한 일렉트릭 기타의 전성기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라리비는 고급 일렉트릭 기타를 만들기 위한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하여 신속하게 대응하였습니다. 
이 기간에는 라리비는 고급 툴링을 개발하고 생산 능률화를 돕는 컴퓨터 제어 밀링머신을 추가하였습니다. 하지만, 라리비의 경우, 더 많은 기타를 제작하는 것 보다는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목재를 사용한 좋은 품질의 기타를 제작하길 원했습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이 만든 합리적인 가격의 하이엔드 기타를 뛰어난 뮤지션의 손으로 연주해주길 원하며, 오늘 날까지도 라리비의 철학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1991년, MTV의 Unplugged 운동 덕분에 악기시장에서 어쿠스틱 기타는 다시 한 번 번창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전 보다 생산성도 더 좋아졌고 라리비는 새로운 목재로 몇 가지의 새로운 모델을 추가하여 하루 8가지의 기타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라리비는 마지막 견습생 David lannone을 포함한 20명이 넘는 직원을 고용했으며, 더욱 성장하기 위한 경험을 계속 쌓고 있습니다.

VANCOUVER 1992-2013

어쿠스틱 시장이 나날히 급성장하고 있으며 하루 16대의 기타를 제작하기 이르렀습니다. 라리비의 어린 아들 매튜는 가공 기술에 관련한 감독을 하기위해 팀에 합류하였습니다. 5년의 짧은 시간동안 밴쿠버 다운타운의 코르도바 스트리트의 2층의 대형 건물을 매입하며, 여러대의 자동화된 밀링 머신이 추가되었습니다. 라리비의 발전에 대한 갈망은 45명 이상의 직원이 하루 32대의 기타를 제작하는 것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1997년 라리비의 주도하에 첫 미국 북부의 올 솔리드 하이엔드급 기타를 800달러 이하에 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기타의 역사에 중요한 변환점입니다.
처음은 한정판으로 시작했고, D-03 모델은 플레이어와 라리비에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기타에 대한 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더 많은 직원과 장비가 더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라리비는 오랜 시간 미국에서 기타를 제작하는 것에 대한 꿈을 키워왔습니다. 2001년 9월 캘리포니아 주 옥스나드에 워크샵을 오픈하였습니다.캘리포니아에 아버지인 라리비와 형제 매튜가 공장을 설립하는 동안 형인 존은 13년동안 성공을 이뤘던 캐나다 사업을 관리하고 03 시리즈의 판매가 증가하면서 생산라인을 분리하여 무광 피니쉬 기타는 캐나다에서 유광피니쉬 기타는 캘리포니아에서 제작하면서 합리적인 생산라인과 효율성이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OXNARD, CALIFORNIA 2001-Present

캘리포니아는 따뜻한 바닷바람과 기타를 제작하기에 더 없이 훌륭한 조건을 가진 곳으로 라리비가 항상 원했던 장소로 새로운 친구들과 숙련된 몇몇의 직원이 이주를 했고 라리비의 또 다른 시작이 되었습니다. 모든 준비를 갖춘 후 일렉트릭 기타와 만돌린 등 다양한 악기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2008년은 세계적인 불황의 시작으로 하이엔드 기타 시장을 위협하게 되었고 여러곳에서 기타를 생산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2013년 11월 라리비 기타는
캐나다의 생산라인을 중단하고 밴쿠버 샵을 캘리포니아로 합병하게 되었습니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금형 및 생산에 대한 계속적인 연구가 지속되었고 레거시 40시리즈에 새로운 브레이싱 시스템을 소개하였습니다. 세상이 점점 발전할 수록 좋은 목재를 구하는 것은 어려워져가고 라리비는 지금도 이런 목재를 얻기위한 여행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Jean Larrivee는 세계곳곳 목재가 있는 좋은 숲을 찾기위해 70살이 넘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탐험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라리비는 70대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고 밝으며 현장을 둘러보고 일하며 목재를 조각하며 겸손하게 일하고 있습니다.